글쓰기나 말하기에 강력하게 통하는 설득 도구, 프렙+키스
우리가 말을 하고 글을 쓰는 것은 궁극적으로 상대방을 설득시키기 위해서이다. 직장인은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인사를 하고, 회의를 하고, 보고를 한다. 꼭 직장인이 아니더라도 말로 시작해 말로 끝나는 건 매한가지다. 인간의 사회생활은 말에서 시작하고 말에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대충 일하는 것 같은데, 보고를 잘해 기획안이 채택되어 승승장구하고, 어떤 사람은 주야장천 야근을 밥 먹듯 했는데도 '일만' 잘한다는 소리를 겨우 듣고 산다.
일을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 그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물론 진짜 일을 못해서 그런 평가를 들을 수도 있다. 그런데, 정말 열심히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말을 못 해서 혹은 보고서 작성을 폼나게 하지 못해서 그런 거라면 너무 억울한 일이 될 것이다.
판사는 판결문으로, 기자는 기사로, 정치인은 연설로, 회사원은 보고서로 평가받는다. 연인과 배우자와 같은 사적인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사적인 관계에서는 호감가는 말투가 팔 할을 차지한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갖는 셈이다.(이 말은 근거 없이 그냥 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상대방을 설득시킬 수 있는, 말하기와 글쓰기 기술을 익혀야 한다. 글쓰기를 할 때 준용되는 규칙이 있다. 바로 프렙(PREP)과 키스(KISS)라는 원칙이다. 여기서 말하는 프렙은 노출전 예방법('PrEP, Pre-exposure prophylaxis)이 아니다. 물론 키스도 그 키스를 말하는 건 아니다.
프렙(PREP)이란?
프렙(PREP)은 Point, Reason, Example or Evidence, Point의 머릿글자를 딴 합성어다. 즉, 글을 쓰거나 말을 할 때, 주장 또는 주제(Point)를 서두에서 말하고, 주장을 뒷받침할 이유나 근거(Reason)를 대고, 그 근거를 증명할 수 있는 사례 또는 구체적인 데이터 증거(Example) 등을 제시한 뒤에, 주장을 다시 한번 강조하라는 원칙이다.
어떤가? 자주 들어온 말 같지 않은가? 우리는 흔히 미심쩍은 주장을 들으면 그 근거가 뭔데? 또는 그걸 증명할 데이터라도 있어? 라고 즉시 되묻거나, 상대방 체면을 생각해서 묻지는 않아도 속으로 생각해 본다. 근거가 뭐지?..
우리가 그런 생각이 드는 이유는 상대방이 자기주장의 근거나 증거를 확실하게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 빠지면 화자 또는 보고자의 신뢰도는 이미 땅에 떨어지고 만다.
자기 계발서나 대체의학을 주장하는 서적에 특히, 이런 글들이 많다. 프렙은커녕, 근거가 모호한 뇌피셜 언론 기사들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기껏 근거와 사례라고 해봤자, 극히 개인적인 경험뿐인데 그걸 또 일반화시킨 글들이 많다. 내가 해보니까 그렇더라는 식이다. 그래서는 독자를 설득시키지도, 신뢰를 받지도 못한다.
다시 한번 기억하자. 말하거나 보고서를 쓸 때, P(주제)-R(이유)-E(예)-P(주제 강조)로 전개하면 설득력도 높아지고 전달력도 강해진다.
키스(KISS)
키스(KISS)는 “Keep it small and simple.”, “Keep it short and simple.”, 또는 “Keep it simple, stupid.”의 첫 글자로 만든 약어다. 프렙(PREP)은 출처가 불명확하지만, 키스(KISS)는 1960년에 미국 해군이 고안한 디자인 원리라고 한다.
언제 어디서든 누구나 알기 쉽게 만든 간단한 해결책이 좋다는 원칙이다. 프로그래머들이 코딩할 때 많이 준용한다. 키스(KISS)는 경제성의 원칙을 강조한 오컴의 면도날(Occam's Razor )에 많이 비유되곤 한다.
14세기 신학자들의 논리 비약이나 불필요한 전제로 점철된 논쟁에 질렸던 윌리엄 오컴은 무의미한 토론을 끝장내기 위해 쓸데없는 가정이나 논리 비약을 금지하자고 제안했다. 박수! 요즘 버전으로 바꾸면 '낄낄빠빠' 쯤 되겠다. 오컴의 저서에 등장하는 원문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많은 것들을 필요없이 가정해서는 안된다" (Pluralitas non est ponenda sine neccesitate.)
"더 적은 수의 논리로 설명이 가능한 경우, 많은 수의 논리를 세우지 말라."(Frustra fit per plura quod potest fieri per pauciora.)
키스(KISS)는 프렙을 시전 하기 전에 반드시 기억하고 있어야 할 원칙이다. 프렙의 원칙에 따라 자기주장의 근거를 댄답시고, 정말 열심히 조사했다는 걸 티 내기 위해 사례를 주절주절 읊기 시작하면, 그래서 말하고 싶은 뭔데? 핵심이 뭐야?라는 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말도 그렇고 글도 그렇다. 항상 'Keep it short & simple'해야 함을 잊지 말자. 데이터를 인용할 때도 가능한 한 소구력 높은 핵심 데이터만 인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수치로 표현할 수 있는 근거라면 더없이 좋다. 예컨대 이 기획안을 실행하면 매출이 150% 수직 상승할 거라는 분석 결과가 있습니다."라는 근거 하나면 될 수 있다면 대박이다.
그러므로 말을 하거나 글을 쓸 때, 프렙으로 충실하면서도 깔끔하게 논리를 전개하되, 늘 키스(KISS)하는 걸 잊지 말자.
블로그 글쓰기에도 프렙+키스
블로그에 글을 쓸 때 프렙과 키스 원칙을 되도록이면 떠올리며 글을 쓰려고 노력 중이나 잘 되지 않는다. 특히 키스 원칙이 잘 지켜지지 않는다. 아직까지 경제적으로 글을 쓰는 법을 터득하지 못한 까닭이다.
성인의 평균 독서 속도는 분당 500~900자라고 한다. 페이지 평균 체류 시간을 3분이라고 하면 대개 1500~4500자, 평균으로 환산하면 2100자 언저리가 될 것이다.
이 블로그에는 2천자가 넘어가는 글들이 대부분이다. 워낙 단문에 익숙한 시대, 블로그 글도 2천 자가 넘어가면 방문자가 뭔 소리래? 하고 이탈할 가능성이 높다.
여담으로 국내에는 프렙이 아리스토텔레스가 완성한 수사학이라고 알려져 있다. 프렙이라는 소재를 갖고 글쓰기 책을 쓴 모 저자의 주장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완성한 프렙이라고 하면 권위가 생길 것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출처를 밝히지 않은 주장은 근거 없는 주장이나 다를 바 없다.
참고로 이 글은 공백 제외 2387자이다. 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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